분류 전체보기
[한겨레 유레카] 민단·총련 함께 하는 우키시마호 참사 추모제 / 이춘재 논설위원
1945년 8월22일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조선인 3735명(일본 정부 발표)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목적지인 부산으로 가지 못하고 일본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침몰했다.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8·15 광복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던 이들을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 유골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1978년부터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8월24일에 마이즈루항에 있는 추모공원에서 조선인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치른다. “전쟁을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 온 일본 정부가 전쟁이 끝났음에도 무사히 귀국시키지 못한 것은 대단히 잘못한 짓이다. 이곳 주민들은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
[서울신문 씨줄날줄] 도시 지하공간 / 이순녀 논설위원
‘파리 아래에 또 다른 파리가 있다. 하수구의 파리. 거리, 교차로, 광장, 막다른 골목, 동맥, 도로가 있는 이곳은 진흙탕이고 인간의 모습은 전혀 없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한 19세기 파리의 하수구 풍경이다. 파리 7구 레지스탕스광장 지하에 있는 ‘파리 하수도 박물관’은 총 2600㎞의 하수도 구간 중 500m를 개조해 만든 전문 박물관이다. 1975년 문을 연 박물관은 파리 하수구 역사와 처리 시설을 볼 수 있는 독특한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박물관이 생기기 훨씬 이전인 1867년부터 하수구 기술자들이 안내하는 투어가 인기를 끌었다니 지하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된다. 영국 런던 중심부의 ‘처칠 워룸’은 2차 세계대전 때 윈스턴 처칠이..
[동아일보 횡설수설] ‘조용한 사직’과 ‘조용한 해고’ / 김재영 논설위원
“나는 지금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중이다.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hustle) 문화’를 그만두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에 올라온 17초 분량의 짧은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며 삽시간에 유행이 됐다. 정해진 시간, 업무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업무만 하는 ‘조용한 사직’은 열정을 강요하던 기존 직장 문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조용히, 티 나지 않게 한다고 상사와 회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조용한 사직’에 대한 기업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조용한 해고(quiet cutting)’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등 글로벌 기업에서 공식적인 구조조정 대신 업무 ..
[한국경제 천자칼럼] 大山 신용호의 ‘천일독서’ / 류시훈 논설위원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올 2분기)이 0.7명으로 역대 최저다.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 그래도 서울 도심에서 주말이면 엄마·아빠 손을 잡은 미래의 동량(棟梁)이 눈에 많이 띄는 곳이 있다.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 지하 교보문고다. 책장을 넘기는 고사리손에서 희망을 본다. 문 연 지 40년이 지났으니 이 서점 복도에 주저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추억이 있는 중장년층도 많을 것이다. 교보문고엔 5대 운영지침이 있다.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한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둘 것 △이것저것 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앉아서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훔쳐 가더라도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
[한겨레 유레카] DMZ 평화의 노래와 반공 타령 / 서정민 기자
1945년 한반도는 해방을 맞았으나 곧바로 두동강 나고 말았다. 미군과 소련군이 분할 통치를 위해 북위 38도 위선 기준으로 경계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삼팔선이다. 남북한 정부 수립 이후에도 유효했던 삼팔선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무효화됐다. 3년간의 전쟁 끝에 다시 경계선이 그어졌다. 휴전선(군사분계선)이다. 새로운 구역도 생겼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이 각각 2㎞씩 물러나 너비 4㎞ 구역 내 군사 활동을 금지한 비무장지대(DMZ)다. 이름과 달리 남북 모두 군사 기지를 설치해 감시 활동과 첩보전을 벌이고, 대북·대남 방송도 한다. 지뢰가 지천으로 깔렸고, 무력 충돌도 종종 벌어진다. 비무장지대는 평화 기원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이곳에서 노래하려는 까닭이다. 마이클..
[동아일보 횡설수설] ‘50년 만기 주담대’ 막차 쏠림 혼란 / 김재영 논설위원
“제도 바뀌기 전에 막차 타야 합니다.” “막히기 전에 서두르세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처럼 대출을 부추기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백 년 대출’로도 리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얘기다. 지난달부터 상품을 출시했던 시중은행들이 갑자기 가입 연령을 제한하거나 아예 판매 중단을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절판 위기에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최근 1주 사이에 1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출시 두 달이 채 안 된 상품이 철퇴를 맞은 것은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4월부터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이 된다고 ..
[한국경제 천자칼럼] 과학적 안전 vs 사회적 안심 / 서화동 논설위원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생물학연구소의 랄프 조머펠트 연구팀이 2007년 10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학생 126명에게 10유로씩 나눠주고 짝을 이뤄 서로 투자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투자 상대의 이전 투자 기록과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판도 볼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다른 사람한테 후했거나 평판이 좋은 상대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주목되는 건 기록(사실)보다 센 평판(소문)의 힘이었다. 과거 기록만 참고했을 때 참가자들이 상대에게 투자한 확률은 60%였다.여기에 ‘너그럽다’ ‘멋지다’ 등 긍정적 소문이 더해지면 확률은 75%로 올랐다. 반면 ‘구두쇠’ ‘비열하다’ 등의 부정적 소문이 더해지자 투자 확률은 50%로 떨어졌다. 게다가 참가자의 44%는 소문을 듣고..
[경향신문 여적] 꿈의 상온 초전도체 / 최민영 논설위원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우연은 발명의 아버지다.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과 기술이 우연히 발견된 사건이 과학사에는 적지 않다. 인류 최초의 화약은 중국 당나라 때 도교의 연단술사들이 불로장생 묘약을 제조하려다 만들었다. 중세 시대 서양의 연금술사들은 금(Au)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현대 화학 기술의 바탕을 놓았다. 17세기 독일의 헤닝 브란트는 소변 속 빛나는 성분으로 금을 만들려고 양동이 60개 분량의 소변을 모아 끓이다가 인(P)을 발견했다. 그것이 훗날 인류사를 바꾼 성냥과 비료의 재료가 됐다. 18세기 스웨덴의 셸레는 망간 돌멩이를 염산에 넣었다가 초록색 기체가 뿜어져나오는 현상을 기록했다. 이렇게 발견된 염소(Cl)는 상하수도 살균 등으로 공중보건에 기여했다..
[한겨레 아침햇밭] 한국경제, 경고음이 높게 울린다 / 이봉헌 논설위원
한국 경제에 저고도 경보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기수를 신속히 들어 올리고 엔진의 출력을 올려야 눈앞의 산봉우리를 피할 텐데 양력이 좀체 붙질 않는다. 생산, 소비, 투자, 수출, 부채, 재정 등 주요 경제지표에 일제히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이런 일이 전임 정부에서 벌어졌다면 보수 신문과 경제지들에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텐데, 윤석열 정부는 불공평하게도 기울어진 경제 저널리즘 덕을 보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살살 다룬다고 현실이 부드러워지는 게 아니어서, “이젠 손들고 싶다”는 자영업자의 탄식과 “우리 경제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는 전문가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쪼그라들고 뒷걸음질하고 있다. 한국이 유엔 기구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된 게 2021년이다. 그 1년 전 한국의 경제규모는..
[한겨레 유래카] 백지, 텅 빈 기표의 뜨거운 함성 / 안영준 논설위원
‘백지’의 가장 보편적 메타포는 뭘까. ‘백지 한장도 맞들면 낫다’ ‘백지 한장 차이’처럼 무게나 두께에 관한 비유는 더러 있지만, 의외로 색깔에 관한 비유는 보기 어렵다. 종이는 본디 흰색이고 주요 쓸모가 표기에 있다고 간주하면, 백지의 보편적 속성 역시 아무것도 쓰이거나 그려져 있지 않은 ‘텅 비어 있음’(공백)일 터이다. 영영사전에서도 ‘white paper’를 ‘백서’와 함께 ‘빈 종이’(blank paper)라고 풀이하는 걸 보면, 흰 종이에서 공백을 읽어내는 건 인류 공통의 감각인가 보다. 정부 공식 보고서를 뜻하는 백서의 유례가 영국 정부 보고서(의회 보고서는 ‘청서’)의 표지 색 관행이라는 점에서 색깔에 관한 드문 용례이나, 추상성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납작한 비유에 불과하다. 텅 빈 상..
[한겨레 유레카] 고구려·발해 지운 ‘동북공정 2막’과 신장위구르 / 박민희 논설위원
중국 국가박물관이 고구려와 발해를 고의로 지운 한국 고대사 연표를 전시해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서 한·중·일 청동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중국 측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한국고대사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빼버린 것이다. 한국의 항의와 수정 요구에도, 박물관 측은 고구려와 발해를 명기하지 않고 연표 전체를 ‘철거’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동북공정’이 결코 끝난 것이 아니며, 중국 공식 역사관에 깊이 뿌리를 내렸음을 확인하게 한 사건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 2002년부터 진행한 동북공정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역사가 중국사이고, 중국 동북지역(만주)은 한민족과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
[서울신문 씨줄날줄] 파타고니아, ‘쉬나드 길’ / 임병선 논설위원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는 수많은 루트 가운데 ‘쉬나드 길’ A와 B가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83) 회장이 1963년부터 2년 동안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며 인수봉에 개척한 길이다. 암벽화도 없이 177m 암벽에 달라붙어 길을 냈다. 쉬나드 회장은 주정뱅이 대장장이의 아들로 학교보다 산과 들을 좋아했다. 동북부 메인주 출신이지만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국립공원이 좋아 움막을 짓고 살았다. 군 생활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징병을 피하려고 간장 세 병을 들이켰다. 그래도 군에 끌려와 낯선 한국에서 유일한 탈출로가 산이었다. 서울 중구 쌍림동의 대장간을 찾아 등반장비를 손수 만들었는데 산꾼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등반장비 회사를 차렸다. 쇠못인 ‘피톤’을 바위에 박고 빼고 하는 과정에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