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TABLE/기사필사
[한국경제 천자 칼럼] 코로나와 반려동물 / 김선태 논설위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장시간 집을 비우고 떠나야 할 때 큰 고민에 빠진다. 단순한 여행이라면 개는 데리고 가도 되지만 숙소 먹이 배변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양이는 집을 떠나면 극심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동반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기타 반려동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동물병원에 맡기자니 격리 불안을 느낄까봐 걱정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반려인들의 이런 걱정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는 모양이다. 출장·대인접촉 최소화로 재택근무가 늘고, 여행 빈도 역시 급격히 줄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천세관에 따르면 올 1~8월 중 해외서 들여온 개·고양이는 총..
[경향신문 여적] 호주의 핵잠수함
영연방국가 호주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다. 1946년 미 주도 글로벌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했다. 도널드 트럼프 때는 미국·일본·인도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에 참여했다.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땅덩어리에 비해 군사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전 세계 군비 순위는 12위(1.4%)다. 한국(2.3%·10위)보다도 낮다. 역내에 군사적 경쟁국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호주에 군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새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첫 핵..
![[한겨레 유레카] 탈진실 시대의 '무지'와 무시 / 안영춘 논설위원](https://img1.daumcdn.net/thumb/R750x0/?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RkqDv%2FbtrfheKYqQx%2Fm2BOmMg6AD4wfrf6QHLiI0%2Fimg.gif)
[한겨레 유레카] 탈진실 시대의 '무지'와 무시 / 안영춘 논설위원
‘무지’와 ‘무시’는 획 하나만 다르지만, 뜻이 가깝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남’(타자)과 ‘님’의 관계처럼, 우연히 표기만 닮은 거라 여겨진다. 영어 ‘ignorance’(무지)와 ‘ignoring’(무시)을 보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표기만 닮은 게 아니다. 동사 ‘ignore’는 ‘무지하다’와 ‘무시하다’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모르는 것’과 ‘알은체하지 않는 것’은 뿌리가 닿아 있다는 듯.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가 모른다고 할 때, 그것은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철학자 낸시 튜어나는 무지를 4개 영역으로 나눴다. ①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②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③ (특권을 가진) 타인의 바람 때문에 모르는 것, ④ 의도적인 무지(레테나 샬레츨 지음,..
[경향신문 여적] 기본값의 위력 / 차준철 논설위원
기본값이란 사용자가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초기 설정을 말한다. 흔히 ‘디폴트’로 불린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의 글자 크기 ‘10포인트’, 인터넷 연결 때 뜨는 특정 브라우저 같은 것들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본값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본다. 특별한 이득이 없는 한 현재 주어진 상황을 고수하려는, ‘현상유지 편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정좌석제가 아닌데도 늘 앉던 자리에 앉고, 항상 다니던 길로 출퇴근하는 식이다. ‘아무러면 어때’ 하는 가벼운 심리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귀차니즘’이나 타성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성향을 겨냥한 마케팅은 이미 주위에 친숙하다. 영화·동영상 사이트 등의 ‘1개월 무료 체험 이벤트’가 대표 사례다. 무료 기간이 끝나고도 무심결에 구독을..
[한겨레 유레카] 징벌적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 박용현 논설위원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표현의 자유 옹호단체들은 명예를 훼손하는 언론 보도에 대한 민형사 제재와 관련해 많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형사처벌은 정당한 보도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위축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인권위원회는 2011년 “회원국들은 명예훼손을 범죄로 다루지 않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징역형은 결코 적절한 제재 수단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속적으로 “형사적 제재, 특히 징역형은 절대 가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는 국가에 폐지를 권고해왔다.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명예훼손으..
[동아일보 횡설수설] 밀라논나 / 김선미 논설위원
구독자 87만 명의 파워 유튜버 ‘밀라논나’(밀라노 할머니) 장명숙 씨(69)는 요즘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는 게 설렌다”고 한다.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고 오늘에 집중하기 때문이란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나를 내맡기지 말고 내 마음부터 따뜻하게 달래고 품어 주세요. 넘어지면 넘어진 채로 잠시 쉬어 가고, 주변도 구경하며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화여대를 나와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명 패션학교 마랑고니에서 유학한 그는 패션 전문가로 인생 1막을 살았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도 일찍 해서 두 아들을 키웠다. 67세이던 2019년 후배들의 권유로 패션 경험과 정보를 나눈 유튜브 활동이 그의 인생 2막을 활짝 열었다. 어쩌다 시작했는데 덤으로 돈이 들어온다며 수익은 기부한다. ..
[한국경제 천자 칼럼] 아프간의 '당나라군' / 고두현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차례로 점령하고 카불까지 밀어닥치자 아프간 정부는 항전을 포기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이달 말로 예정된 미군 철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정부군은 무기를 버린 채 앞다퉈 도주했다. 인구 4000만 명인 아프간의 정부군 숫자가 30만 명이 넘는데도 7만5000여 명에 불과한 탈레반 앞에 맥을 못 췄다. 뉴욕타임스는 월급을 받으려고 장부에만 이름을 올린 ‘유령 병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는 5만 명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금이 엄청났지만 이 돈도 줄줄 샜다. 미국이 20년간 쏟아부은 돈만 2조달러(약 2340조원)에 이른다. 자금줄로 따지면 게임이 안 되지만 정부군은 속수무책..
[경향신문 여적] 홍범도의 귀환 / 안호기 논설위원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이다. 반장(返葬)은 객지에서 죽은 이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 지내는 것을 뜻한다. 고향은 죽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6·25 때 북녘을 떠나온 실향민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2~3세는 대부분 ‘나중에 통일되면 고향땅에 이장해 달라’는 유언을 듣는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인 15일 국내로 봉환된다. 홍 장군은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자 함경도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해 싸웠다. 1910년 두만강 건너편 간도로 근거를 옮긴 뒤 1919년 3·1운동 직후 가장 먼저 대한독립군을 조직했다..
[한겨레 유레카] 실언과 사탕 / 정남구 논설위원
미국의 과학저술가 샹커 베단텀은 (Hidden Brain)라는 제목의 책에서 ‘의식적인 뇌’에 대비되는 ‘숨겨진 뇌’라는 개념을 새로 내놓았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다양한 영향력, 즉 무의식, 잠재의식, 암시성 같은 개념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의식적인 뇌는 합리적이고, 신중하고, 분석적이다. 이와 달리 숨겨진 뇌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하기 위해 마음의 지름길을 사용한다. 어린이가 세상에 널리 퍼진 편견, 편향을 곧장 학습하는 건 숨겨진 뇌의 작용이다. 의식적인 뇌가 그것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은 ‘어른’이 된다. 그런데 의식적인 뇌가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첫째, ‘압박감’에 시달릴 때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정치인이 연설..
[서울신문 씨줄날줄] 랜섬웨어2.0 / 전경하 논설위원
하버드대 출신 진화생물학자 조지프 포프 박사는 1989년 90여 개국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관련 시민단체, 연구자 등 2만여명에게 ‘에이즈 정보 소개’라는 플로피디스크를 보냈다. 이 디스크는 PC에 저장된 파일들을 암호화했고 암호를 풀려면 189달러를 보내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189달러 사용처는 에이즈 관련 사업이었다. 그 디스크에는 ‘AIDS.trojan’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트로전’(trojan)은 정상 파일 형태로 위장한 악성코드를 뜻한다. 포프 박사의 행위는 공격 대상 내부에 침입해 파일을 암호화한 뒤 해당 파일을 이용하고 싶다면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 랜섬웨어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랜섬웨어는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다. 해커들은 과거에..
[동아일보 횡설수설] 로톡 갈등 / 장택동 논설위원
크고 작은 다툼이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1년에 약 50만 건의 고소·고발이 벌어지고 500만 건 가까운 민사 소송이 제기되는 게 현실이다. 송사에 얽힌 시민의 눈에 법조문은 암호처럼 어렵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도 막막하다. 변호사와 상담하고 싶어도 얼마나 달라고 할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걱정이다. 변호사 3만 명 시대를 맞았지만 아직 변호사와 시민 사이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그 틈을 로톡 등 법률 플랫폼이 파고들고 있다. ▷시민들이 법률 플랫폼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편하고 싸기 때문이다. 로톡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혼, 성범죄, 임대차 등 70여 개 분야별로 변호사들이 등록돼 있어 원하는 변호사를 찾기 쉽다. 각 변호사는 다양한 방식의 상담을 제공하는데 15분 전화상..
[한국경제 천자 칼럼] 되살아난 국어사전 / 고두현 논설위원
고교 2학년 수업시간. 교사가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임시제목)는 ‘데칼코마니’였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가제는 랍스터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가제’ 뜻을 모르니 ‘바닷가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얼마 전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에 나온 장면이다. 중3 학생의 문해력도 30%는 미달, 11%는 초등학교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달 발표한 국제학업평가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문장 속의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25.6%)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글자만 알지 문장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순우리말 뜻은 더 모른다. 지난해 광복절 연휴가 사흘로 늘었을 때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느냐. 사흘은 4일 아니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나마 올 들어 국어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