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에 얻은 늦둥이여서일까. 사춘기 반항이 한창이라는 남의 집 중2와 달리 아들은 엄마와 꼭 붙어다니는 ‘엄마 껌딱지’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6일 새벽도 그랬다. ‘차를 옮기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날은 따라오지 말라고, 엄마 혼자 가겠다고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그날 새벽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날이 개고 있던 수도권과 달리 경북 포항의 수해 상황은 심각했다. 인근 하천이 범람해 모자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밀려들었다. 엄마는 차를 빼려다 포기하고 나오려 했지만 수압에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밖에 있던 아들이 문을 열어줬다. 이미 걷기 힘들 정도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몸이 약해 탈출할 자신이 없었던 엄마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을 어렵게 돌려세웠다. “너라도 살아서 나가. 수영 잘하잖아.”
▷기독교인인 엄마는 천장 모서리 배관 위에 엎드려 구조될 때까지 15시간을 기도하며 버텼다. 늦둥이를 살아서 보겠다는 의지로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견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기력을 회복할 즈음에야 남편이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마음을 단디 먹어야 우리 아이 마지막을 볼 수 있다.” 아, 이 지옥을 보라고 신은 나를 어렵게 살려낸 건가. 왜 늙은 내 몸을 거두어가지 않고 축구와 떡볶이를 좋아하던 열다섯 어린아이를 데려가셨나.
▷고인이 된 박완서 소설가는 26년간 자랑스럽게 키워온 의사 아들이 사고로 앞서 갔을 때 묵주를 집어 던지며 신을 원망했다. “그 애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도 견디기 어렵거니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나 하는 회답 없는 죄의식은 더욱 참혹하다”고 썼다. “참척(慘慽)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그게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 일지라도 모진 고문이다.”
▷그날 물 빠진 지하주차장에서는 늦둥이 김 군과 함께 해병대를 갓 전역한 서 씨(22), 20년 넘게 홀아머니를 모셔온 홍 씨(52), 33년간 장손집 살림을 꾸려온 허 씨(55), 베트남 참전 용사 안 씨(76), 자식에 손 벌리기 싫어 퇴직 후에도 지게차를 몰던 남 씨(71)와 아내 권 씨(65)가 발견됐다. 성실했던 이들의 황망한 죽음을 보고서야 메뉴얼을 뜯어고치고, 차수벽을 세우고, 배수펌프를 설치하느라 부산하다. 포항의 비극 이후 세상은 좀 더 안전해지겠지만 그리운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는 올 추석, 엄마는 선물인 듯 비수인 듯 늦둥이의 마지막 인사를 뇌고 또 뇌며 통곡할 것이다.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요.”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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