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한겨레 유래카] 백지, 텅 빈 기표의 뜨거운 함성 / 안영준 논설위원

    [한겨레 유래카] 백지, 텅 빈 기표의 뜨거운 함성 / 안영준 논설위원

    ‘백지’의 가장 보편적 메타포는 뭘까. ‘백지 한장도 맞들면 낫다’ ‘백지 한장 차이’처럼 무게나 두께에 관한 비유는 더러 있지만, 의외로 색깔에 관한 비유는 보기 어렵다. 종이는 본디 흰색이고 주요 쓸모가 표기에 있다고 간주하면, 백지의 보편적 속성 역시 아무것도 쓰이거나 그려져 있지 않은 ‘텅 비어 있음’(공백)일 터이다. 영영사전에서도 ‘white paper’를 ‘백서’와 함께 ‘빈 종이’(blank paper)라고 풀이하는 걸 보면, 흰 종이에서 공백을 읽어내는 건 인류 공통의 감각인가 보다. 정부 공식 보고서를 뜻하는 백서의 유례가 영국 정부 보고서(의회 보고서는 ‘청서’)의 표지 색 관행이라는 점에서 색깔에 관한 드문 용례이나, 추상성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납작한 비유에 불과하다. 텅 빈 상..